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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와 중생이

    하나임을 상징하는 일주문

     

    화암사 입구에는 일주문이 있다. 이 일주문에는 '금강산 화암사'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이라는 뜻은 부처님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하나의 기둥과 같이 세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일주문을 통과하여 100미터를 올라오면 좌측편에 부도, 탑비 20기의 승탑이 천년 명찰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역대 스님들의 수도장

    수바위

     

    절의 상징인 바위의 이름은 수바위, 쌀바위, 수암 등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이 바위에서 진표율사를 비롯하여 화암사의 역대 여러 스님들의 수도장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쌀 낟알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가 1미터, 둘레 5미터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어 가뭄이 들면 웅덩이에 고인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수암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수암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깨니 때 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세번 흔들면 2인분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욕심 많은 한 객승이 이를 보고 '3번 흔들어 2인분의 쌀이 나오면, 300번 흔들면 200인분의 쌀이 나올 것' 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구멍에서는 혈이 나왔고, 이후 쌀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에 기인하여 벼화, 바위암자를 써서 화암사로 불려지고 있다. 화엄사를 화암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화암사란 사찰명을 오래 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때는 1912년 건봉사의 말사로 편입 되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화려한 단청과 꽃문살

    심우도 대웅전

     

    화암사 큰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측면 각 3칸의 다포계 겹처마양식으로 팔작지붕의 전통양식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면 상단에 수기 삼세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앙으로 좌측에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과 우측면에 미래불인 미륵보살 세분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정좌하고 계신다. 그리고 신중탱화는 동진보안보살과 금강신, 제석, 범천팔부신중 등 48신중을 모신 탱화가 봉안 되어 있다. 화려한 단청과 문살의 꽃문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법당 밖 심우도 그림은 불교의 최종목표가 깨달음이 아니라 깨달음 이후의 중생교화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천년을 지켜온

    지장보살의 명부전

     

    대웅전 오른쪽으로 명부전이 있다. 이 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 맞배지붕 양식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는 지장보살과 좌우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중심으로 좌우로 명부시왕과 동자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명부시왕들을 대신하여 심판하는 판관과 기록과 문서를 담당하는 녹사, 그리고 저승사자와 인왕상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말이 없다

    설법전

     

    명부전 우측 바로 옆에 강원도 지정 문화재자료 114호인 설법전이 있다. 사찰에서 경전강의를 하거나 참선수행을 하는 법당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현재는 템플스테이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차실에는 그리 크지 않은 목조아미타불상과 조선후기의 탱화가 있다.

    화암사 원불이신

    아미타 부처님

     

    화암사 아미타부처님은 내설악 백담사 미륵보전 법당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1182호 목조 아미타불좌상과 함께 영조 24년(1748년) 조성된 세 분 부처님 중에 한 분이다. 지금 백담사 미륵 보전 법당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부처님은 원래 이곳 화암사에서 모셔간 부처님이다. 그리고 세 분 중 한 분은 안타깝게 지금도 그 행방을 모르고 있다. 부처님의 특징으로는 부처님의 머리에 정상계주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하며, 나발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여 당시 사각형, 평판적인 얼굴보다 우수한 편이다. 또한 눈이 가늘고 입이 작으며 코가 돌출하여 독특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상체와 가슴이 넓고 어깨가 둥글어 당당한 인상을 주며 하체의 앉아 있는 형태도 넓고 큼직하여 상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두 손은 시무외인, 여원인으로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을 짓고 있고 두발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통견불의는 두꺼운 편인데, 옷 주름이 돌출하고 어깨의 Q주름과 무릎사이 주름들이 곡선으로 처리된 점, 가슴은 U자형 중복주름이나 가슴의 내의 상단주름의 곡선인 주름들은 조선초기의 특징으로 내려온 것으로 불상을 좀 더 돋보이게 한다. 당시 이러한 특징은 18세기 전반의 목불상 중에 대표작인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팔각구층석탑

     

    불교에서의 탑은 본디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오른 뒤, 사리를 모아 봉안했던 것으로 무덤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탑 안에는 사리 외에도 부처님을 상징하는 물건들(불경, 불상 등)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8각 9층 석탑양식은 고려시대로 들어와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부도탑

     

    화암사의 부도탑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며, 부도탑 주변은 한 겨울에 폭설이 내려도 녹아 쌓이지 않는 특이한 곳이다. 부도탑 또는 승탑은 불교에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이다. 춘담당 대선사비는 조선후기 1,800년대 중반 화암사를 크게 중창한 스님 부도탑이다. 이 비명은 경교 김병학 [정조시대 좌의정, 순조21년(1821년) ~ 고종 16년(1879년)]의 글씨체이다. 부도의 어원은 부처이며, 따라서 부처 그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 전국의 많은 절에서 볼 수 있다.

    법당 안팎에 금강산 풍경이 있는

    삼성각

     

    대웅전 왼쪽으로 금강산문을 지나 미타암을 지나면 화암사 최고 기도처가 되어버린 삼성각이 있다. 작은 법당 안에는 가운데 칠성 탱화를 중심으로 산신과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탱화와 나반독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법당 안팎의 벽에 금강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부는 금강산의 천선대 세존봉, 삼선대 등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광이, 외부에는 신선봉, 신선계곡 등의 금강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화암사가 금강산 1만 2천봉 8만 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 봉우리인 신선봉 아래 첫 사찰인 것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특히 지역신도들에게는 최고의 산신 기도처로 매우 영험하다 하여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풍악 제일루

    범종각

     

    불전사물인 범종, 운판, 목어, 법고 등을 비치하는 누각이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라는 뜻이지만 지옥의 중생을 향하여 불음을 전파하고,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하여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범종루의 공식명칭은 풍악 제일루이다.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이며 제일루는 누각 안으로 들어가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범종루에서는 수바위와 동해 그리고 속초 시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도 멋지지만 누각 안의 그림 하나하나 빼놓을 것 없는 멋진 곳이다.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신선계곡 성인치

     

    화암사 우측편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금강산 제1봉인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절을 따라 흘러 내려간다. 이 계곡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화강암으로 만든 다리가 있으나 예전에는 나무로 엮어 만든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현재도 다리 아래에 돌다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수바위에서 등산로를 따라 1시간가량 걸어 올라가면 성인치(일명 선인대)라는 곳이 나오는데 그 멋진 풍광을 사료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무릇 천하의 명산이 8개인데 그 중 하나가 금강이며, 금강의 남쪽에 용이 무릎 꿇고 호랑이가 웅크려있고, 봉황이 날고 학이 춤추는 듯한 기세의 준엄하지만 약간 평평한 곳이 미실령이다. 미실령의 북쪽으로 구불구불 빙 돌아 왼쪽에 있는 것이 화엄봉이다. 봉우리 아래에 한 첩의 그림 병풍 같고 나한이 가지런히 열 지어 있는 듯한 것이 화채암이다. 화채암의 남쪽에 평원하고 수려한 것이 성인치이다. 성인치의 위에 수십개의 석분이 있는데 신성들의 유적이다." 시간과 체력만 된다면 꼭 올라가 보길 권한다.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밝은 달을 걸어서 등불을 삼은

    영은암

     

    옛조사들이 이곳에서 생멸을 뛰어 넘는 지혜를 닦아 각지에 오른 곳이고 누구나 이곳에 머물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안심입명을 얻는 선불장이다. 항상 맑은 물이 흘러 소리를 내면 산이 울리고 골짜기가 응하며 때로는 물결이 뒤집혀 흰 물방울이 설화처럼 뛰어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반석위에 무지개를 드리우고 구슬을 뿌리는 기관이 있으니 참으로 신령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송골을 깎아서 들보를 만들고 앞산에 머물고 있는 구름을 끌어다가 지붕을 만들고 지나가는 바람에 멈추게 하여 벽을 만들었으며 밝은 달을 걸어서 등불을 삼았다. 이곳에 머문 자는 본분을 깨닫는 돈오의 진미를 맛 볼 것이며 이곳을 찾는 이는 빈손으로 와 실리를 거루어 갈 것이며 기보와 기용은 뭇 마왕을 몰아서 호법하는 선신을 만들고 대지를 변화시켜 진불의 국토를 만드는데 있다.

    조선 정조대왕의 원당

    미타암

     

    조선조 22대 성군 가운데 한 분인 정조대왕 때 화암사에 주석하던 도한대사께서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정진을 하던 스무하루 날 밤, 빛이 나와 한양의 궁궐에 이르렀다. 이에 대왕께서 제조상궁을 보내 스님을 궁궐로 초청해 연유를 물어 알고는 크게 기뻐해 화암사 미타암 화응전을 순조의 생모인 가순궁의 원당으로 삼고 6폭 병풍을 하사하는 한편 절의 사방금표를 정해 주었다. 미타암은 화암사 창건 당시 진표율사께서 지은 암자로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창건 하였으며 창건 당시 지장암이라 하였는데 태종 원년 다시 짓고 미타암이라 개칭하였다. 안양암은 인조6년에 광명선사가 창건하여 정종 원년에 사승 해성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암자는 없고 빈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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